특별히 특정 출판사를 선호하거나 출판사를 보고 책을 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막상 방안에 있는 책장을 보고 있으면 한두 개의 이름이 특히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가람기획이다.
아마 역사 서적과 전쟁사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선택된 이름이 아닐까?
뭐, 당시에는 그만큼 가람기획이라는 이름을 보면 '여기 책은 어느 정도 믿을 만 하지...'라는 생각이 스치며 선뜻 구매를 결정할 정도였다.
'무기의 역사'에서 그런 생각에 회심의 일격을 당했지만... 흠. 어쨌든 당시 개인적으로 괜찮게 보던 출판사 중 하나였고, 지금도 내놓는 책들 제목을 보고 있으면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은 그 가람에서 세계 전사 시리즈 중 6번째로 나온 녀석이다.
딴지일보 연재를 묶은 책이라고 하는데, 딴지를 자주 안봤었으니 그런 건 구입 포인트에 들어있지도 않았었다. 영화와 전쟁사. 그 자체로 구매 선택 스위치를 누를 수밖에 없었을 뿐.
가람에서 출판한 작품 중에는 비슷한 컨셉의 책인 '영화로 마스터하는 2차대전' 유럽 전선 1권, 태평양 전선 1권이 있다. 저자인 이동훈은 밀리터리/군사 서적을 전문으로 번역하는 분으로 살림에서 내놓은 '영화로 보는 태평양전쟁'을 먼저 내놓았다. 지금도 온라인 서점에서 이름으로 검색해보면 맛있어보이는 책이 많이 보인다. |
이 녀석을 고른건 영화가 다룬 전쟁사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이나 혹은 영화와 실제 전쟁에서의 차이, 자잘한 TMI에 대한 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영화를 중심에 둔 영화 해설서에 가깝다.
음. 원하던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쉽고 재미있는 책으로 전사 시리즈에 넣는 게 상당히 아쉬운 서적이다.
엄청 심도 있는 내용을 기대한 것이 잘못이라고 해도, 영화를 실마리로 전쟁사를 조금 더 자세히 훑는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사를 개략적으로 알고, 영화를 이해하도록 하는 책이다.
가벼운 만큼 내용 자체는 어렵거나 하지는 않다.
나름대로 영화에 관련된 지식들과 '딴지일보' 출신의 필력 덕분에 글은 빈정거림의 재미라는 게 매우 잘 느껴진다.
'문제는' 책의 성격이 전사(전쟁사/군사사) ― 관점에 따라서는 그런 내용들이 전사가 아닐 수는 없지만, 평균적으로 봐도 전사 시리즈라는 항목에 넣기에는 힘들다. ―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고, 세세하게 찌르고 들어가는 맛 역시 부족하다.
이제 막 군사 관련 서적을 읽거나 접하려는 독자라면 흥미 +1 용으로는 나쁘지 않다. 밀리 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인터넷에서 재미 삼아 쓴 듯한 글에서 친근함을 느끼고 쉽게 볼 수 있겠고, 몰랐던 다른 군사 분야(또는 영화판)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와서는 그마저도 사실 단점이 될 수 있다. 조금 있으면 20년 전 글이 되는 덕분에 올드한 글인 데다가 그동안 바뀐 걸 생각하면 차라리 보다 더 좋은 책들이 많으니 말이다.
여기서 다루는 영화들도 이젠 고전이니(...)
이 책은 나에게 있어 가람의 2차 콤보였다.
책 자체는 이틀만에 읽을 정도로 피식거리며 재미있게 읽었다. 이걸 읽기 전에 '전날의 섬'이라는 소화하기 어려운 책을 봤어기에 소화가 잘되는 아주 가벼운 디저트를 먹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만족하기에는 책 자체가 많이 아쉽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사상자 비교와 전반적으로 미국 만세 요소에 무섭게 집착하는 모습, 너무나도 딴지 일보스러운 뉘앙스들, 불분명한 경계상에 위치한 글의 내용들 그 외에 많은 소소한 것들에서 지나치게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볍게 웃고 떠들자는 식의 문체를 싫어하는 분과 밀리터리에 관해 이미 어느 정도 내공을 쌓은 독자라면 이 책은 헌책으로라도 피하길 바란다.
군사관련 서적들은 너무 딱딱하다. 하지만 그 딱딱함 속에서 진실성과 어떤 힘을 느낄 수 있으며, 고민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 책은 가볍고 읽기 쉽다. 좋다.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서 진실성도 약해지고 어떤 힘을 느끼기도 어렵다. 다시금 생각해 보면 출판사 이름만 보고 선택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따끔한 예방 주사였다.
* 2008-07-19 18:50:24 이글루스.
- 가람기획 세계전사 시리즈. (괄호는 알라딘 서점 분류 - 세계의 전쟁사 시리즈 묶음 총 8권)
제대로 된 시리즈 기획은 아니었는지 이 검색어로 찾으면 목록이 나오지 않는다. 일단 찾은 도서 제목들.
활이 바꾼 세계사 : 활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도 없었다! (4)
말이 바꾼 세계사 (5)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 (2)
연합함대 그 출범에서 침몰까지 : 태평양전쟁과 일본 연합함대 (3)
제2차 세계대전의 에이스들 : 전설적인 격추왕들의 이야기 (6)
한국인의 눈으로 본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총 2권 (1)
한국인의 눈으로 본 제2차 세계 대전: 유럽 전쟁 총 2권
(전쟁영화로 마스터하는 2차세계대전 : 태평양 전선) (9)
(전쟁영화로 마스터하는 2차세계대전 - 유럽 전선) (8)
가람기획에서 나온 책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구작을 표지 갈이해서 내놓거나 이름을 바꿔 개정판을 내놓는 일이 잦은데, 이 세계전사 시리즈 역시 몇 개만 숫자가 붙었지 나머지는 숫자 없이 '세계 전사 시리즈'라고만 적혀서 나왔다.
활이 바꾼 세계사 역시 그 이전에는 '가람역사 52'였다. 통일성이 없는 중구난방식 기획을 보면 출판사 이름에 기획이 붙은 게 아이러니.
요즘에는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를 내놓는데, '세계사 다이제스트 100 = 세계사 101 장면'에서 보듯이 이름이 달라진 경우가 있다. 과거부터 책을 샀던 분이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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