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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 지미 - 요정과 전설의 섬 브리튼으로의 여행

infantry0sub 2024. 11. 21. 03:15

2002년 작. 푸른길.

브리튼의 요정과 전설을 다양하게 담고 있는 책...으로만 알고 구입했다가 낭패를 봤던 서적이다.

 이 책은 엄연히 여행기로서 저자가 자료 ― 전설이나 설화집, 구전 설화, 괴담? ― 를 바탕으로 직접 여행지를 정해 이동하고, 숙박하는 것을 위주로 단출하게 적어놓았다.

 거기에 여행의 기반이 된 관련 지식과 요정 이야기, 전설을 맛보기 식으로 섞어놓은 책.

 

지금은 절판됐지만, 2009년 당시 구입할 때 책의 두께와 분량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이었다. 요정과 전설에 혹해서 산 사람으로서 읽는 내내 피눈물을 흘렸을 뿐이지...

 

 저자가 직접 여행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로 여행을 함께 하면서 성지 순례하듯이 이런저런 곳을 찾아가는 것 자체는 어쩌면 자료로서 괜찮다고 볼 수도 있다.

 요정 또는 엘프에 대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간의 약간의 차이점을 설명한다던가, 당시 국내 서적에서는 보기 힘들고, 인터넷상에 떠도는 지식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요정에 관한 이야기는 목마름을 조금은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정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보다는 지역과 분위기에 더해 설명되는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여행기'라면서도 실제 여행에 대해 다루는 것에서도 부실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책을 내기위해 여행을 했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여행하면서 그 일상을 짧게 적어놓은 메모나 일기, 블로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책으로 옮긴 인상을 풍긴다고 할까?

 자연스럽다는 점에서는 읽기 편하지만, 부실한 지역 사진과 짧은 글, 자리만 차지하는 깔끔하지 못한 삽화들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좀 더 여행기에 대해 보완해서 함께 여행한다는 느낌을 주거나 제목처럼 요정과 전설에 중점을 둔 서적으로 내놓았다면 오히려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책이 돼버렸다.

 

 번역 자체는 전체를 통틀어 이상하다고 느낄만한 곳은 별로 없지만, 아쉬운 점이 꽤 있는데 그중 가장 아쉬운 것은 번역자 혹은 편집인의 추석이나 추가 도움말이 없다는 점이다.

 

요정이나 설화 자체가 오래된 이야기이고, 일반인들이 듣거나 보기 어려운 단어들도 많다.

  더구나 저자는 각 이야기를 하면서 괴물이나 존재를 일본의 도깨비나 일본 토속 요괴들과 비교하는 부분이 몇 군데 보인다. 학술서적이 아니지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약간의 주석이나 국내 이야기와의 비교문, 생소한 단어/존재에 대한 부가 설명이 필요함에도 이 책에는 아무것도 없다.


* 도깨비 : 일본의 오니를 번역한 듯한데, 우리나라의 친근한 도깨비와는 아주 다른 성격의 요괴다. 도깨비라고 그냥 평면적인 번역을 하는 것은 그나마도 요정이나 설화 속 존재에 대해 분류가 세밀한 책의 분위기와 달리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요정이나 영국 설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서적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소장용은 아니었고,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도 될 수 없었을 뿐.

 그저 저자 한 개인이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조금 억지스럽게 맞춰 내놓은 ― 마을로의 여행이야기에서 요정이나 설화 소개로 이어질 때의 부자연스러움이 상당하다 ― 번역본에 불과하다.

 

 지금 와서 절판된 이 책을 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질과 양 모두에서 떨어지는 편이다. 다만, 쓸만한 정보는 나름 쏠쏠하므로 이 녀석을 도서관등에서 한 번 빌려본다면... 필요한 내용만 채록한 후 깨끗하게 반납하는 게 가장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  지금은 한국의 설화, 전설과 그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존재를 다루는 책들이 당시와 달리 많이 나와 있다. 위키를 통해서도 체계적으로 정리된 글들이 많다. 해외 쪽 전설도 그리스-로마에서 벗어나 인도-켈트-스코틀랜드 등 선택의 폭이 정말 많이 넓어졌다.